작성일 : 11-02-10 03:50
안상엽 목사
 글쓴이 : 운영자
 
아버지 순교의 피를 이어받은 목사



 6.25 참전 유공자의 훈장을 가슴에 달고 단아하게 재향군인의 제복을 입은 홍안의 노장(78세)은 연세보다 젊은 건장한 체격과 힘 있는 목소리로 자신의 지난날들을 풀어가고 있다.
이 분이 바로 Tacoma 에 있는 Faith 신학대학 대학원의 객원교수이면서 밴쿠버 원로목사회의 회원인 안 상엽 목사다.
“내가 이미 얻었다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쫓아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쫓아가노라“       (빌립보서 3;12-14)
  이 말씀을 붙들고 평생 목회에 임했다고 한다.

   사람이 사람을 ‘안다’는 것은 참으로 쉬운 일이 아니다. 성경에서는 ‘안다’는 표현이 많은데 그 뜻은 참으로 깊고 오묘하다. 주님은 요한복음 10장에서 “참 목자는 그의 양들을 알고 양들은 목자의 음성을 듣고 그를 따른다.“라고 하셨고 15장에서는 포도나무와 가지 비유 말씀으로 ‘믿는다’함은 곧 ‘아는 것’으로 가르쳐 주셨다. ‘안다’(기노스고)는 말의 본래의 뜻 속에는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결혼함으로 비로서 알게 된다는 것이다.

78년의 생을 짧은 시간에 표현해서 알게 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
   일생을 대략 네 부분으로 나누어 본다.
첫째 출생 후 성장과정  둘째 교육과정  셋째 목사의 자녀로서의 고난과 전쟁터에서의 경험  넷째 47년간의 목회와 은퇴생활 이다.

   한국의 종교의 역사를 보면 1000년이 넘는 ‘유교’와 약1500년의 ‘불교’ 그리고 몇 천 년 간 전승해온 원시종교(무당),  이렇게 보면 기독교는 130여년의 짧고도 피눈물 나는 고난의 역사였다. 할아버지 대를 이어 아버지 그리고 그 아들, 손자까지 4대 내지는 5대밖에 되지 않는 기독교 역사다. 할아버지 아버지 대의 초대교회는 일본의 압제와 6.25동란으로 그야말로 핍박과 고난의 하루하루였다. 현재를 사는 우리는 목숨 걸고 신앙을 지켰던 초대교회를 배우고 선조들의 철저한 복음주의 신앙을 본받아야 할 것이다.
   한국 기독교 역사는 미국의 남북장로교, 호주, 캐나다, 침례교, 캐나다 장로교에서 파송된 선교사들이 선교지를 두고 복음 활동의 뿌리를 내렸었다. 그때 안목사의 부친 안 덕윤 목사는 손 양원(진주)목사 및 몇 목사들과 함께 복음전파가 가장 힘든 영남, 호남 지방에서 활동을 하고 있었다. 부친목사는 1939년 평양신학교를 32기로 졸업했고, 1950년 6.25동란 시 피 흘려 순교하기까지 성경학교와 목회에 충성한 한국 초대 교회의 목사였다.

   안 목사는 1932년 9월 26일 경남과 전남을 경계 짓는 섬진강 변에서 태어나 그 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소학교 시절은 ‘세계 제2차 대전’ 말기를 접하게 되었다.  일본 제국주의 침략행위는 한국인과 한국교회에 대해 혹독한 핍박을 가했고 그때에 겪은 아픈 상황들은 어린 그의 눈에 그리고 지금도 머릿속에 그림같이 각인 되었다. 그 많은 핍박의 경험을 다 말 못하지만:  예컨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교회 안에 일본 국기를 걸어놓고 예배 전에 국기에 대한 경례, 그리고 동쪽 일본 궁성과 천황을 향해 절을 하도록 강요 당 했다. 집집마다 ‘가미다나’를 설치하고, 일본 국교인 ‘신도’ 예배행위를 강요당했다. 일본정부가 우리민족에게 가한 혹독한 핍박과 무서운 결과를 보여준 장면이었다.  우리가 기억하는 한국기독교사에서 존경받는 한 경직 목사님은 templeton 상을 받는 자리에서 ‘나는 이 상을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나는 신사참배를 한 죄를 지은 사람이다.’라고 고백했을 때 한국교회는 물론 온 세계교회가 한국인의 올바른 신앙과 순교정신에 감동했었다. 

  일본인이 강요한 우상에 대해 머리 숙이지 않는 목사들을 감옥에 잡아넣었다. 아버지 목사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리고 가족들에게는 동물도 잘 먹지 않는 ‘콩 깨 묵’ 조차도 주지 않았다.  목사의 가족은 굶기를 밥 먹듯 했고 삶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안 목사의 어린 시절은 배 고품과 고통 속에서 하루하루 견디어야 했다.  그때 어린 소년의 생각에는:  “예수 믿는 다는 것이 무엇이며? 목사가 무엇이며? 왜 목사의 가족은 굶주리고 헐벗고 고통을 당해야 하는가? 질문하면서 ‘나는 커서 절대로 목사는 안 될 거야, 예수 안 믿을 거야.” 라는 신앙에 대한 의심과 결심만이 마음에 가득했다. 

   신사참배 반대와 ‘끝날의 심판’ 설교로 감옥에 갇힌 아버지에게 어머니는 한 달에 한번 아버지가 갈아입을 내의를 준비해 가지고 ‘주재소’(경찰서)를 찾아갔었다. 그 때 어린 안 목사는 어머니의 치맛자락을 붙잡고 따라갔다. 아침에 도착하면 오후 늦게야 받아 주었다. 아버지의 더러워진 내의에는 피와 그리고 이와 빈대들이 범벅이 되어 감옥에서 당하신 고문과 열악한 환경을 한눈에 알아 볼 수 있었다.  집에 오면 어머니가 아버지 서재에서 소리 없이 통곡하는 모습을 보았다고 한다. 이는 40대의 젊은 목사 부인의 처참한 모습이다. 

  배 고품과 고통 속에 지내는 가족들에게 설상가상으로 남동생 둘이 약도 쓰지 못하고 열병으로 죽었다.   가마니에 시체를 싸서 머리에 이고 가 손수 땅을 파고 묻으시는 어머니의 모습,  여인이 그가 낳은 그의 자식을 두 번이나 머리에 이고 가서 땅에 묻는 애절한 모습은 아직도 안 목사의 가슴 속에 담긴 평생 잊을 수 없는 괴로움과 아픔이라 한다. 

  안 목사는 어린 시절 어머니와 6남매가 날이 새면 배 고품에 견디다 못해 논밭두렁에 나가 풀을 캐다가 독을 빼고 먹었던 기억이 생생하다고 한다. 이런 삶이 한국 초대교회의 어려운 모습이요, 특별히 순교자들과 그 가족의 산 증언이다. 성장되고 화려할 정도의 현대교회와 교인생활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초대교회의 산 증거이다.   그러나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한국 교회와 성도들, 그리고 택하신 목자들과 목사의 가족을 버리지 아니하셨다. 1945년 일본의 36년간의 압박에서 해방을 주셨고, 아버지 목사는 감옥과 핍박에서 풀려나고 가족들은 물론 교회는 다시 힘을 얻기 시작했다.

   그러나 1950년 6.25동란으로 한반도는 또다시 전쟁의 회오리로 혼란 속에 빠져들어 갔다. 그즈음 아버지 목사는 김제노회지역에서 목회를 하고 있었다.  파죽지세로 몰려 내려온 인민군과 남한에 있던 지방 빨갱이들이 힘을 합쳐 선량한 사람들과 교인들을 죽이기 시작했다. 어느 지역에서는 기독교인들을 산채로 우물에다 십여 명 씩 생매장 했다.  그때 아버지 목사는 미쳐 피난 못한 교인들과 함께 남아 있다가 인민군과 지방 빨갱이들에게 붙잡혀 예배당에서 인민재판을 받았다. 죄 없는 목사를 몽둥이로 때리고, 창으로 찌르고, 결국에는 머리를 때려 두개골이 깨지면서 54세에 순교하셨다. 아무도 그 시신을 처리할 수가 없었다. 빨갱이들에게 오해받아 잡혀가기 때문이다. 예배당 앞에 버려진 목사의 시체는 사람들의 발길에 채였고 밟혔다. 결국 노인어른들이 시신을 가까운 공동묘지에 묻었다.
   이것이 목사의 아들인 한 소년이 체험한 아픈 경험이었기에 ‘이것이 과연 믿음의 길이요? 목사의 길이요 순교자의 모습인지?’ 자문자답 한다.

   그러나, 아버지의 순교 현장을 보지 못한 청년 안 목사는 19세로 아무것도 모르는 채, 6.25전쟁이 난지 한 달 후 부산에서 군에 입대하게 되었다. 나라가 풍전등화 같은 위기 처한 시점에 ‘김해’에서 3주간 훈련을 받고 전쟁터로 배치되었다. UN군으로 미제1기갑사단(77포대)에 소속했다. 대구 부근 사과밭 전투지에 도착한 그 날부터 사망의 골짝에서 하루하루 연명해 갔다. 피의 전투지인 낙동강을 넘는 왜관전투, 북진하는 오산전투, 백천 전투, 대동강 변 전투, 진남포 입성전투. 38선을 넘는 백천 전투<한국군 25명중 3명만이 살아남았는데 그 중 한사람이 안 목사였다. 하나님은 건져주셨고, 남겨 주셨다. 진남포에서 다시 북진, 압록강 상류 ‘의주’ 쪽으로 전진할 때 중공군의 인해전술이 시작되었다. UN군의 참전으로 승리의 북진, 그리고 1.4후퇴 때에 이북의 많은 기독교인들이 남한으로 이동해서 종교와 삶의 자유를 얻었다.  그 후 휴전 되었고, 군인 안 목사는 제대하기까지 3년 반을 군복무하게 된 것이다. 
  
이때까지도 안 목사는 복음주의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마치 독일의 ‘니체’ 같이 “하나님은 죽었다”는 ‘사신신학’을 내 세운 그의 삶의 모습과 독백처럼 앞으로  믿고 나가야 할 일에 많은 회의를 품은 젊은이었다.
   전쟁이 계속되고 있는 중, 안 목사는 전투지에서 무장한 그대로 휴가를 받아 집으로 오게 되었다. 아버지의 순교의 소식을 듣는 순간, 전쟁터에서 집에 온 20세의 전투병인 안 목사는 복수의 끓는 피를 억제할 수가 없었다. 그 빨갱이의 가정을 찾아갔다.  이들을 모두 죽이고 복수 하리라 마음먹었다. 그러나 총부리 앞에 선 어머니의 만류로 많은 사람을 사살 할 뻔한 무서운 순간을 면했다. 쓰러진 아버지의 목에 창을 찌른 그 빨갱이의 부모와 죄인들에게 “죄 없는 목사, 그리고 나의 어머니 때문에 너희들을 총으로 복수하지 못하나...내가 일선으로 가기 전, 다음 주일 교회에 나와야 한다.” 소리치고, 그들은 교회에 출석하게 되었고  “믿다가 세상 떠나세요”라고 말했다.
 
  전쟁터에서 휴가로 집에 온 나는 아버지의 묘소로 달려갔다.  하루 종일 뒹굴며 오열했다. 사랑하는 아버지를 생각하며 하나님께 호소했다. 결국은: “아버지! 며칠 후에 이 자식은 다시 전쟁터로 갑니다. 이 자식, 혹시 살아 돌아오면 아버지가 하시던 일  제가 꼭 이어 가겠습니다.” 순교하신 아버지에게, 그리고 주님께 서원의 기도를 하면서 가슴이 뜨거웠었다.

   그 날 이후 안 목사는 신학공부와 목회를 하면서 어떤 어려움과 시험이 왔을 때에도 굽히지 않고 가슴에 훈장을 만지며 아버지의 순교의 피를 더럽히지 않으려고 참으면서 이겨왔다. 1960년 장로회총회신학(지금의 장로회신학대학) 제53기로 졸업하고, 경기노회에서 목사안수 받고, 목사가 된 후 약3년 간 불광동에 있는 은광교회와 승동 교회에서 목회하다가 1963년7월 장 춘실 씨(지금의 사모)와 결혼했으며, 한 달 후 홀어머니를 아내에게 부탁하고 미국 보스톤 신학대학원으로 유학을 떠났다.  4년 후 사모도 미국으로 들어와 행복 된 가정을 꾸몄다. 

  사모는 1938년3월20일, 평북 의주 출생이며, 이화여대 사대교육학과를 졸업했고, 미국에 들어와 그리고 캐나다에서 학령 전 교사(Preschool Teacher)로 20여 년 동안 교직생활을 하다가 61세 때 정년퇴직을 했다. 슬하에는 아들 하나, 딸 하나, 손자가 3, 외손녀가 2 있고, 하나님의 축복아래 신앙생활 잘하며 복되게 살고 있다.

   안 목사는 1963년에 미국에 들어온 이 후 북미 한인교회의 개척자로서: 보스톤 한인교회, 워싱톤 D C 한인장로교회, 토론토한인장로교회의 초대 담임목사로 시무했고, 그리고 런던 한인장로교회(캐나다 온타리오 소재), 키치너한인장로교회, 토론토 동부한인장로교회, 선교교회, 밴쿠버형제교회(지금은 이름이 바뀜) 등 10개 교회를 개척하고 섬기었다. 1999년까지 약47여년의 목회생활을 하고 은퇴했다. 

  목회를 하면서도 쉼 없이 연구를 계속하여, 보스톤 신학대학원, Wesley신학교, TST(토론토 낙스 신학, 연합 신학원)를 수료했고, 미국인디아나 주(Fort Wayn)Concordia신학대학원에서는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전공은 성서신학과 비교종교학으로, 지금도 계속연구하며, Faith신학대학원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기독교 역사상 첫 번 선교사요, 첫 목회자요, 첫 신학자로, 신약 중에 13서신을 쓴 사도 바울의 정신을 거울삼아 결론으로 나의 간증을 마치려한다.
 첫째; 내게 유익된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배설물 같이 여긴다.(빌3;8)
 둘째: 내가 약할 때 곧 강하며 약한데서 온전해진다.(고후12;9-10)
 셋째: 내가 가난함으로 부요함과 감사함을 배웠고.(빌4;12)
 넷째: 내가 이미 얻었다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룬 것은 아니지만.....
      주님이 주실 상 곧 그 푯대를 향해 쫓아가노라. (빌3;12-13) 

  목사에게 사실 자랑 할 것은 아무것도 없고, 목회지에서 은퇴한 목사로서 다만 순교의 길을 가고 있을 뿐이라고 목사님은 겸손하게 말씀을 끝냈다.

<정리: 박훈자 사모>


최종헌 12-11-27 07:11
답변 삭제  
반갑습니다.
사모님도 나오니 더 좋네요.
기독교문화연구원의 발전을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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